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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1단 답답, 2단 추운 딜레마 여름밤은 언제나 타협의 계절 같다 더위를 피하려고 선풍기를 켜면 처음엔 시원하고 상쾌하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몸이 금세 적응하고 바람이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살짝 강도를 높이면 그때부터는 또 춥다 선풍기 1단은 답답하고 2단은 춥다 그 사소한 1단계의 차이가 여름의 밤을 길게 만든다 괜히 리모컨을 쥐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자기 전에 작은 고민이 이어진다. 1단의 바람은 은근히 유혹적이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처음엔 충분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공기가 막히는 듯 답답해진다 몸은 아직 덥고 땀은 마르지 않은데 바람은 그저 지나가는 정도다 선풍기 앞에서 괜히 몸을 더 가까이 가져가거나 얼굴 쪽으로 방향을 조절한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버튼을 눌러 2단으로 바꾼다 이때부터 딜레.. 2025. 10. 21.
혼자 웃고 아무 일 없던 척한 순간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제각각의 표정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면 그 자리가 묘하게 어색해진다 그래서 웃음을 수습하려고 괜히 기침을 한다든지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돌린다 순간의 웃음은 분명 진짜였는데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바꾸며 다시 일상으로 섞여 들어간다 그렇게 웃음은 사라지고 남는 건 작은 흔적뿐이다. 혼자 웃는 순간은 보통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예를 들면 대화 중에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라든지 혼자만 아는 농담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의 말투가 예전 친구를 떠올리게 하거나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이 스쳐가면 그때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는 내 웃음의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니 오.. 2025. 10. 20.
일찍 자야지 다짐할수록 늦게 자는 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다짐하는 순간이 있다 몸은 피곤하고 눈꺼풀은 무겁지만 이상하게도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침대에 누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은 휴대폰을 잡고 있고 화면을 넘기는 동안 시계는 계속 달린다 분명히 일찍 자겠다고 마음을 굳혔는데도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결국 다짐이 강할수록 더 늦게 잠드는 밤이 찾아온다. 그 이유는 마음의 긴장에서 시작된다 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기는 게 사람이다 내 안의 작은 저항이 다짐을 향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일찍 자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뇌를 각성시키고 머릿속은 더 바쁘게 움직인다 책상에 남겨둔 일들이 떠오르고 내일의 계획이 불쑥 다가온다 마음은 조용히 쉬고 싶지만 다짐 자체가 마음을 더 시끄럽게 만든.. 2025. 10. 19.
새 물건 오기 전 상상으로 먼저 씀 온라인에서 결제를 마치고 주문 완료 화면을 본 순간부터 기다림은 시작된다 아직 택배 상자는 포장조차 되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그 물건을 쓰고 있다 새로 산 가방을 들고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이나 새로 산 전자기기를 켜고 이것저것 설정하는 순간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한다 물건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기분에 빠진다 상상 속에서 먼저 쓰는 것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묘하게 달콤하다 오늘 밤에 도착할 수도 있고 내일 아침 기사님이 초인종을 누를 수도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설렘이 나를 들뜨게 한다 업무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들기 직전까지도 생각은 새 물건으로 향한다 실물은 없는데도 내 일상은 이미 달라져 있다 상상이 내 삶을 한 발 앞서 끌고 가고 있는.. 2025. 10. 18.
방과 정신이 함께 더러워질 때 처음에는 방이 조금 어수선해지는 것뿐이었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올려두고 빨래를 하루 이틀 미뤄두고 컵을 치우지 않은 채 둔 것뿐인데 어느새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흐트러진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방이 어지러워질수록 내 마음도 따라 흐릿해진다는 거다 뭔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쌓여가는데 방이 복잡한 만큼 정신도 함께 뒤엉켜버린다. 정리되지 않은 방에 있으면 해야 할 일에도 집중이 잘 안 된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물건들이 하나하나 시선을 끌고 아직 치우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신호를 보낸다 그 사이 나는 해야 할 일보다 주변 어지러움에 압도당한다 결국 책상에 앉아도 펜만 굴리고 다시 휴대폰을 들게 된다 물리적 공간의 혼란이 곧바로 정신의 혼란이 되는 순간이다.방이 더러워질 때 나타나는 심.. 2025. 10. 17.
알람 끄고 5분이 1시간 되는 마법 알람 끄고 5분이 1시간 되는 마법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하루가 시작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유혹이 시작된다 손끝으로 알람을 끄고 나서 ‘딱 5분만 더’라는 속삭임이 찾아온다 그 5분은 마치 달콤한 선물 같다 몸은 여전히 무겁고 이불 속은 따뜻하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눕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5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언제나 1시간이라는 배신으로 돌아온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분명 알람을 끌 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있었는데 한 시간은 도둑처럼 훔쳐가 버렸다 그 사이 나는 수많은 꿈을 꾼 듯도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깊은 어둠 속을 헤맨 듯도 하다 불과 5분만 더 누워 있었다는 착각은 뇌가 만들어낸 작은 환상이다 결국 나는 지각할 .. 2025.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