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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혼잣말 늘어갈 때 느끼는 나이

by 평범한 일상생활 2025. 10. 1.

예전엔 집에서든 길거리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다녔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혼잣말이 늘었다. 진짜 목소리로 내뱉는 말도 있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도 있고, 심지어 그 혼잣말에 내가 대답까지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방 안에서 양말을 찾다가 “대체 어디 갔지…” 라고 말하면 내가 또 “아니 분명 어제 여기다 놨잖아” 라고 응수한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옆방에 가족이 있는데도 그런다. 그 순간 깨닫는다. 아 나이 들었구나.

 

혼잣말 늘어갈 때 느끼는 나이
혼잣말 늘어갈 때 느끼는 나이

 

어릴 땐 혼잣말 하는 어른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됐다. 왜 자기한테 말을 하지? 대화 상대가 없어서 그런가?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말을 입 밖으로 꺼낼까? 근데 이제는 알겠다. 그건 외로움 때문만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 바뀐 것뿐이다. 예전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이제는 입으로 내뱉어야 정리되는 시점이 온다.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는 많은데 정리는 느릴 때, 입이 두뇌보다 먼저 움직이는 희한한 구조가 된다. 그래서 그런가. 혼잣말할 때마다 내가 마치 나 자신과 회의 중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행동 적절한가요?” “네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거의 자기 자신과 회의하는 생활인.

가끔은 혼잣말도 등급이 있다. 단순 감탄형 “아놔 왜 이래” “이게 왜 여기 있지” “아 맞다 맞다” 이런 건 기본이다. 그다음부터는 위로형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면 잘했어” “에이 뭐 어때 다시 하면 되지” 그리고 최근 들어 생겨난 건 협상형. “이거 하고 나서 커피 마시자” “이거 정리만 하면 쉬자” “끝나고 치킨 시켜줄게” 이렇게 나 자신과 거래를 한다. 심지어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때도 있다. 약속 안 지키면?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진심으로 화낸다. “야 너 아까 치킨 시켜준다고 했잖아.” 진짜 웃긴다. 나와 나의 관계가 점점 복잡해진다.

혼잣말이 늘어나면서 느끼는 건 하나. 내가 점점 ‘내가 아는 나’와 ‘내가 관리해야 할 나’로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엔 그냥 ‘나’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통제하고, 설득하고, 혼내고,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혼잣말이 늘어나는 건 단순히 말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나와의 소통이 늘어난 거다. 근데 이 소통이 꼭 나쁜 건 아니다. 혼잣말을 하면서 오히려 감정이 덜 쌓인다. 말로 풀어버리니까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아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하고 입 밖으로 꺼내면 그냥 피곤함이 인정되고 끝나버린다. 근데 그걸 말 안 하면 더 오래 끌고 간다. 묘하지.

문제는 그 혼잣말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거다. 처음엔 민망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만 했는데 요즘은 길에서도 은근슬쩍 한다. 이어폰 끼고 있는 척하면서 혼잣말 하는 사람들 있잖아. 예전엔 이해 못했는데 이젠 내가 그렇다. 진짜 통화 중이 아니라 그냥 혼잣말 하는데 사람들이 눈치를 주지 않게 하려면 폰을 귀에 대야 한다. 그래서 괜히 전화를 받는 척하며 “아 맞다 맞다 그렇게 해야지” 라고 말한다. 사실 누구랑 얘기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럴 때 살짝 두렵기도 하다. 이러다 진짜로 대화를 시작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야 근데 너 그때 왜 그랬냐?” “그건 네가 먼저 그랬잖아.” 이렇게 나 자신과 싸우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근데 동시에 조금 기대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랑은 말이 통할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상대가 나 자신이니까.

결국 혼잣말이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나이 들어서 생기는 습관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또 하나의 기술 같다. 사람은 결국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순간이 많아진다. 그럴 때 혼잣말은 중요한 장치다. 나를 붙잡아주는 말,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말, 나를 이해해주는 말.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들었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혼잣말이 나오는 걸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안 나올 때가 더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아무 말도 안 나온다는 건 내 안에서도 소통이 끊겼다는 뜻일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난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해보자.” 듣는 사람이 나 하나뿐인 응원이라도 꽤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