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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에어컨 껐나 확인하러 돌아간 날

by 평범한 일상생활 2025. 10. 4.

밖에 나와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히 나올 때 에어컨을 껐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켜져 있는 장면이 재생된다 집 안에서 차갑게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전기요금 폭탄이 떠오르고 혹시나 불이 나는 건 아닐까 하는 과장된 상상까지 덮쳐온다 결국 발걸음은 다시 집 쪽으로 향한다 괜히 돌아가는 것 같아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멈출 수가 없다.

 

에어컨 껐나 확인하러 돌아간 날
에어컨 껐나 확인하러 돌아간 날

 

현관 앞에 서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분명히 별일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이 짓을 또 하고 있구나 싶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보면 역시 에어컨은 꺼져 있다 리모컨 불빛도 없고 조용하기만 한데 그제야 마음이 풀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안도감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를 집으로 다시 불러들인 건 결국 내 의심이었으니 괜히 힘만 뺀 셈이다.

이런 경험은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온다 가스 불을 껐는지 문을 잠갔는지 콘센트를 뽑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다시 확인하러 간다 분명히 습관처럼 손으로 껐는데도 집을 나서는 순간 기억은 희미해진다 마치 내 뇌가 나를 놀리는 듯하다 의심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결국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되돌아오는 길은 늘 지루하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지만 또 반복한다.

사실 이건 단순히 물건을 껐냐 안 껐냐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감과 불안이 섞인 심리의 발현 같은 거다 혹시 내가 방심해서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안전을 가장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일로 번질 수 있다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확인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의심을 키운다 어느 순간엔 내가 기계처럼 돌아가서 집을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는 걸 깨닫는다.

웃긴 건 이런 확인이 쓸데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는 점이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꺼져 있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이라도 켜져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계속 나를 붙잡는다 결국 합리적인 계산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움직인다 불필요함을 알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위해 다시 돌아가는 게 더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체력이 소모된다.

가끔은 일부러 사진을 찍어둔다 에어컨을 껐을 때 리모컨과 본체 사진을 찍어두면 밖에 나와서 불안해질 때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사진을 보고도 마음이 안 놓일 때가 있다 눈으로 보면서도 혹시 잘못 찍힌 건 아닐까 하는 새로운 의심이 생겨버린다 확인은 안도 대신 또 다른 확인을 불러온다 그게 이 습관의 끝없는 굴레다.

이런 스스로가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모습 같기도 하다 완벽하게 자신을 믿지 못해서 끊임없이 확인하는 존재 결국은 조심성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습관이 자랑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안에 끌려다니는 내 모습이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알면 조금 위로가 된다 다들 한 번쯤은 돌아가서 문을 열어본 경험이 있으니까.

에어컨을 껐나 확인하러 돌아간 날은 결국 작은 에피소드로 끝난다 돌아오는 길에 괜히 피곤하고 허탈하지만 다음번에도 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아마 똑같이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다만 언젠가는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져서 문을 나서는 순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